'2008/08'에 해당되는 글 7건
- 2008/08/19 [2008년 5월]의 어느날,쿄토 키요미즈데라-특이점...발견하셨습니까?
- 2008/08/19 [2008년 2월]의 어느날,홋카이도 아사히카와 역.
- 2008/08/19 [1992년 7~8월]의 어느날,생애 네번째 올림픽의 추억.
- 2008/08/19 [2008년 8월]의 어느날,문득 노래를 듣다가.
- 2008/08/18 [2008년 6월]의 어느날 읽었던 책 중에서-모모코의 21세기 일기(2004년 7월 12일)
- 2008/08/17 [2007년 2월]의 어느날,도쿄 이케부쿠로.
- 2008/08/17 [2008년 2월]의 어느날,홋카이도 오타루.
[2008년 5월]의 어느날,쿄토 키요미즈데라-특이점...발견하셨습니까?
異國旅行 2008/08/19 22:33
넘어지면 2년 재수없다던 니넨자카였던가,3년 재수없다던 산넨자카였던가.암튼 그곳에서.
교토 여행의 묘미라면 역시 마이코상을 보는 것이다.
나와같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같은 일본인들조차도 신기한지 마이코상만 지나가면 너도나도 사진세례가 터질 정도로 그 인기는 참 대단하다.
뭐 교토에서 요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마이코상은 진짜 마이코상이 아닌 관광차 돈내고 마이코상 체험을 하는 여성들이긴 하지만.뭐 진짜든 가짜든지간에 볼때마다 신기하고 독특한 느낌을 갖는건 여전하고...무엇보다 '나 일본 여행왔어요'라는걸 제대로 증명해주는 기념사진이 되기도 하는지라 절대 놓칠 수가 없을터이다.
어쨌거나 너도나도 달려들며 찍는 마이코상이고 저도 발견하자마자 한번 찍어보았습니다...이 사진의 특이점,다들 발견하셨습니까?사실 특이점이라고 하기엔 별거 아니긴합니다만...정답은 학생들이 전부 저의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지요.(잠시 존댓말 모드.)
근데 난 저 학생들과 전혀 친분이 있는것도 아니요,그렇다고 내 카메라를 봐달라고 부탁을 한것도 아니였다.
그리고 미리 밝히지만 이 사진은 어떠한면에선 도촬사진이다.그런데 어째서 저런 사진이 나왔을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
내가 마이코상을 발견한 후 그녀들에게 OK 사인을 받고 열심히 사진을 몇장 찍어대던 그 때,수학여행을 온 학생 단체 역시 마이코상을 발견했더랬다.간사이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그 일대의 학생들과는 다르게 좀 세련된 것으로 보아 도쿄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온 학생들 같다만...암튼 그 아이들도 마이코상을 보더니 우르르 몰려가 단체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더라.단체사진인지라 자기 스스로 찍을 수가 없어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불러대며 자신의 카메라를 선생님께 주며 찍어달라는게 꽤 재미있어보였는데,사진을 찍고 있었던 난 사진을 찍고픈 흥미대상이 얘네들로 바뀌어 그 틈을 나와 선생님이 각각 학생들의 카메라로 셔터를 누를때 옆에서 슬쩍슬쩍 도촬을 했더라지.
그러던 중.
사실 그 학생들의 선생님은 나이가 꽤 있었던 할아버지 선생님이였는데,기계를 다루는게 조금은 서투르셨던 모양이다.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헤매고 계실때 그런 선생님을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던 아이들은 뻘쭘했던건지...그 틈새를 노리고 있던 나의 카메라를 향해 '하이 포즈~!'나도 그만 얼떨결에 찰칵.
이 사진을 찍자마자 그 학생들도 단체로 웃어버리고(자기네들이 생각해도 웃기긴 했나보다.)선생님도 웃으시고,나도 어쩐지 웃겨서 껄껄 웃으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던 기억이 난다.생각해보면 그렇잖은가.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마치 서로가 아는 사이마냥 당연하게 카메라를 향하여 포즈를 취하고 있고 그걸 또 당연하듯 찍어대고 있는 모습이.
요 사진은 진짜 절묘한 타이밍이 불러일으킨 재미있는 사진인 듯.아,나만 그런가?
[2008년 2월]의 어느날,홋카이도 아사히카와 역.
異國旅行 2008/08/19 21:35
일본에 가면 가장 큰 즐거움중에 하나가 기차를 타는 것이다.
기차야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굳이 별다른거 있어?라고 물으신다면...정말로 별다른게 있다.
다양한 열차의 디자인과 종류,한치의 오차(물론 천재지변에 의해 지연되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없이 딱딱 정확히 도착하고 출발하는 행렬도 그러거니와(솔직히 일본가서 JR 기차 시간표가 사전만한 두께의 책으로 나온것을 보고 의아해하기도 하였고,실제로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무척 놀라기까지 했다.),무엇보다 제복과 모자를 갖춰쓴 멋진 철도원(보고 있노라면 프로페셔널한 분위기가 팍팍 넘쳐흘러 그리 멋져보일수가 없다)의 운전 모습을 넓은 유리창(가끔 작은 유리창도 있긴 하다만)너머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다.이런걸 보고 있으면 왜 철도 오타쿠가 생겨났는지 충분히 수긍이 간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여서 그런지 의식중이든 무의식중이든 나의 여행사진엔 이렇게 철도와 관련된 사진이 적어도 한장씩은 꼭꼭 껴있더란다.
.
.
.
.
홋카이도에서 비에이를 들어가려면 아사히카와라는 도시를 꼭 거쳐야 한다.
아사히카와역에서 온통 비에이 포스터로 도배가 된 통로를 지나 밖으로 나가면 한 두세칸짜리의 오래된 작은 기차가 있는데,이 기차가 비에이와 후라노까지 열심히 달려간다.
최신식 기차를 보다가 이 기차를 보면 초라함이 단박에 느껴지지만,이것도 다른 기차에선 느낄 수 없는 이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는 법.
그 작은 기차만큼이나 어쩐지 친근한 철도원 아저씨(혹은 할아버지)도 만날 수 있을뿐만 아니라!
글고보면 저렇게 대놓고 철도원의 모습을 찍어본게 이때가 처음이기도 한데(물론 사진을 찍을땐 언제나 사진 찍어도 괜찮겠냐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센스를 잊으면 안된다.)사실 맨처음에는 꽤 망설였더랬다.그 동안 아무리 찍고 싶어도 그 '프로페셔널'한 포스에 눌려 뒷모습만 열심히 찍고 정면 사진을 찍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그날 비에이까지 가는 이 기차를 처음타는 것인지 아닌지 어쨌거나 어떤 일본인 커플이 차 정면에서 기념사진 삼아 열심히 찍어대던 통에 옆에서 보고 있던 나도 '나도나도!'를 속으로 외치며 후다닥 달려가 사진을 좀 찍어도 괜찮겠냐고 여쭤봤었다.그랬더니 흔쾌히 웃으시며 OK 사인을 내주신 철도원 할아버지.
사진을 찍고 있으니 계속 쑥스러우신지 자꾸 먼곳만 쳐다보시길래 카메라 좀 한번만 봐달라고 했더니 더욱 더 쑥쓰러워하시며 그저 지긋이 먼곳만 바라보신다.하지만 사진속의 저 미소를 보고 있으면 나의 부탁을 기분좋게 받아들여주시는 철도원 할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볼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비에이 기차역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옆에 앉아있었던 할아버지와의 에피소드.한가득 여행가방을 싣고 카메라를 이고 있던 나에게 방긋 웃으며 좋은 카메라라고 말을 걸어주던 할아버지.이국땅에서 느끼는 외국인(그네들이 보면 우리가 외국인이겠지만.)의 친절함에 친구녀석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하코다테에서 머물렀던 숙소의 주인 아주머니가 먹으라고 챙겨주신 사탕을 할아버지 드시라고 슬쩍 내밀었더랬다.웃으며 고맙다고,잘 먹겠다고 받아주시는 그 모습에 왠지 또 기뻐했었지.
그리고 내리시면서 마지막에 즐거운 여행을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정말로 짠~했던 순간.
손을 마구마구 흔들며 작별의 인사를 했던 그 순간이 잠시 떠오르는구나.
정말이지,여행에서 이런 낯선이들과의 소통은 너무나도 큰 의외의 즐거움이라는걸 다시 한번 확인.
덧.
여기서 잠깐.일본여행의 팁.
팁이라면 팁이랄까...일본어의 대화가 막연하게라도 가능하다면 일본여행을 할때 적어도 한번쯤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좋을 것 같다.여행을 제대로 느끼려면 현지인과의 소통을 간과할 수 없는게 사실.
그래서 그런건지...'이왕 온거 여행을 아주 제대로 느낄란다!'라는 그 마음이 발동하여 낯을 많이 가리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에 가면 이상하게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기는지 잘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현지인에게 말을 걸때가 많다.(물론 그와 반대로 말을 걸어주는 경우도 있고.)
사실 말을 건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다만,처음 시도는 도쿄보단 지방 사람들에게,그리고 젊은이들보단 아저씨,아주머니,할머니,할아버지에게 걸어보시길.특히 4,50대 아주머니들은 한국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말을 해주시는 센스도 있고...무엇보다 편하게 대해주셔서 용기내어 말걸어본걸 결코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1992년 7~8월]의 어느날,생애 네번째 올림픽의 추억.
日常旅行 2008/08/19 11:06
재미삼아 따지고 보니 내가 태어나서 올림픽을 경험한 횟수는 딱 여덟번이다.
태어났던 80년도를 시작으로 4년마다 한번씩 찾아왔던 84년 LA올림픽,88년 서울올림픽,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96년 애틀란타 올림픽,00년 시드니 올림픽,04년 아테네 올림픽...그리고 요즘 한창 꽃피우고 있는 08년 베이징 올림픽.
그렇다고 하여도 태어난지 한달된 신생아가 올림픽을 기억하리란 만무하고,네다섯살 먹은 꼬마아이가 기억하기에도 당연 무리인지라(그때 당시 기억한다하더라도 난 솔직히 25년전의 일을 기억할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따져보면 내 일생에서의 올림픽은 88년도부터 시작하는게 아닌가 싶다.
사실 88년도의 나도 이제 갓 학교에 들어간 어린 국민학생이였긴 했지만...외국에서나 있을법한 썸머타임을 시행하며 TV방송에서 여기저기 떠들어댄것도 생생히 기억나고,굴렁쇠 굴리는 내 또래의 소년과,외국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에 손잡고 그 큰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았던것도 기억나니 무시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그런 내 생애 올림픽 역사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올림픽이라면 역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다.
솔직히 경기가 어쨌고 어떤 선수가 어떻게 활약했는지 그런건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데(정말 제대로 기억나는 거라면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의 여홍철 선수의 체조경기.그때당시 여고생들 TV부여잡게 만들고 가슴에 아주 불을 질렀던 선수이셨더란다.)왜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올림픽이라고 하냐면 다른때와는 남달랐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초등학교 시설이 워낙 좋아 스크린이든 대형 TV든 교실안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내가 다니던 그 시절 국민학교엔 TV가 없었더랬다.(그저 약 15년전 얘기인데도 왜이리 7,80년대 이야기 같은지,원.)슬슬 4,50명의 교실내 아이들은 난감해진다.올림픽은 봐야겠는데 TV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 그 아이들이 생각해낸 방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집에서 TV를 가져오는 방법이다.마침 전파상을 하던 반아이가 있었는데(라고 기억하고 있다)용케 작은 중고 TV를 어찌어찌하여 학교까지 가지고 왔더란다.앞뒤 볼록하고 투박하기 그지 없던 그 작은 중고 TV는 우리들에게 슈퍼스타였다.요즘시대의 그 어떤 화질짱짱한 PDP TV보다 더.
어쨌거나 그렇게 가져온 TV앞에 수업도 잠시 제쳐두고 선생님과 함께 옹기종기 둘러앉아 뭣도 모르면서 그저 한국선수가 다른나라 선수보다 뭔가 잘하거나,혹은 이기고 있으면 이래저래 흥분하여 소리를 질러대고 이리저리 날뛰던 아이들.별거 아닌것 같지만 그 즐거웠던 기억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올림픽으로 만들어주기 충분한 것이다.사실 올림픽 자체가 전세계의 하나된 축제가 아니던가.그 축제를 그 어린나이에 제대로 즐기고 있었던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경험은 이제 요즘같은 디지털 시대-혼자 앉아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면 순식간에 모든 결과를 알 수 있는-에는 경험하고 싶어도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인지라 더 그런것 같다.
그나저나 국민학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생각해보면 참 에피소드들이 많다.
그래서 전화선을 연결해 하이텔 한번 접속하는게 쉽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인터넷을 마음껏 하게 된다면 어떤 공간에다가 그때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을 잔뜩 올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했는데(그때 당시 글쓰기가 취미였던지라.)이젠 뭐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들도 가물가물하니...
아,'그땐 그랬지'라며 옛날 일을 애틋하게 추억하는 지금의 나를 보고 있자니...왠지 확 늙어버린 기분이 든다.
태어났던 80년도를 시작으로 4년마다 한번씩 찾아왔던 84년 LA올림픽,88년 서울올림픽,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96년 애틀란타 올림픽,00년 시드니 올림픽,04년 아테네 올림픽...그리고 요즘 한창 꽃피우고 있는 08년 베이징 올림픽.
그렇다고 하여도 태어난지 한달된 신생아가 올림픽을 기억하리란 만무하고,네다섯살 먹은 꼬마아이가 기억하기에도 당연 무리인지라(그때 당시 기억한다하더라도 난 솔직히 25년전의 일을 기억할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따져보면 내 일생에서의 올림픽은 88년도부터 시작하는게 아닌가 싶다.
사실 88년도의 나도 이제 갓 학교에 들어간 어린 국민학생이였긴 했지만...외국에서나 있을법한 썸머타임을 시행하며 TV방송에서 여기저기 떠들어댄것도 생생히 기억나고,굴렁쇠 굴리는 내 또래의 소년과,외국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에 손잡고 그 큰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았던것도 기억나니 무시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그런 내 생애 올림픽 역사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올림픽이라면 역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다.
솔직히 경기가 어쨌고 어떤 선수가 어떻게 활약했는지 그런건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데(정말 제대로 기억나는 거라면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의 여홍철 선수의 체조경기.그때당시 여고생들 TV부여잡게 만들고 가슴에 아주 불을 질렀던 선수이셨더란다.)왜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올림픽이라고 하냐면 다른때와는 남달랐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초등학교 시설이 워낙 좋아 스크린이든 대형 TV든 교실안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내가 다니던 그 시절 국민학교엔 TV가 없었더랬다.(그저 약 15년전 얘기인데도 왜이리 7,80년대 이야기 같은지,원.)슬슬 4,50명의 교실내 아이들은 난감해진다.올림픽은 봐야겠는데 TV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 그 아이들이 생각해낸 방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집에서 TV를 가져오는 방법이다.마침 전파상을 하던 반아이가 있었는데(라고 기억하고 있다)용케 작은 중고 TV를 어찌어찌하여 학교까지 가지고 왔더란다.앞뒤 볼록하고 투박하기 그지 없던 그 작은 중고 TV는 우리들에게 슈퍼스타였다.요즘시대의 그 어떤 화질짱짱한 PDP TV보다 더.
어쨌거나 그렇게 가져온 TV앞에 수업도 잠시 제쳐두고 선생님과 함께 옹기종기 둘러앉아 뭣도 모르면서 그저 한국선수가 다른나라 선수보다 뭔가 잘하거나,혹은 이기고 있으면 이래저래 흥분하여 소리를 질러대고 이리저리 날뛰던 아이들.별거 아닌것 같지만 그 즐거웠던 기억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올림픽으로 만들어주기 충분한 것이다.사실 올림픽 자체가 전세계의 하나된 축제가 아니던가.그 축제를 그 어린나이에 제대로 즐기고 있었던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경험은 이제 요즘같은 디지털 시대-혼자 앉아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면 순식간에 모든 결과를 알 수 있는-에는 경험하고 싶어도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인지라 더 그런것 같다.
그나저나 국민학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생각해보면 참 에피소드들이 많다.
그래서 전화선을 연결해 하이텔 한번 접속하는게 쉽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인터넷을 마음껏 하게 된다면 어떤 공간에다가 그때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을 잔뜩 올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했는데(그때 당시 글쓰기가 취미였던지라.)이젠 뭐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들도 가물가물하니...
아,'그땐 그랬지'라며 옛날 일을 애틋하게 추억하는 지금의 나를 보고 있자니...왠지 확 늙어버린 기분이 든다.
[2008년 8월]의 어느날,문득 노래를 듣다가.
日常旅行 2008/08/19 02:21
<뭐 1년 지난 사진이니까 괜찮겠지.(먼산)게다가 초반에 홈피에 올려놓은거 중국팬들이 다 퍼가서 여기저기 퍼뜨린지라 이미 퍼질때로 퍼진....이지만 사실 이 사진은 웹엔 처음으로 올리는 사진.>
간만에 판본여사 얘기나.이번에는 언제나 그렇듯 씹는 얘기는 아니고...껄껄.
나는 들을 노래들이 없다 싶으면 주기적으로 옛날 노랠 반복해서 듣고 있는데,그중에는 역시 사카모토양의 노래가 많다.
매번 질리도록 들어왔어도 잊혀질만할때쯤 들어주면 뭔가 새로운 맛이 나는지라.
확실히 10대에서 20대 초중반의 그녀의 노래들은 그러했다.
다른 가수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느낌.그저 팬이니까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껏 접했던 그런 노래와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였고,그 이유라면 당연 칸노씨 덕분일 것이다.
그녀의 모든 음악은 다 칸노씨의 손에서 탄생되었으니까.그 덕분에 그녀와 칸노씨가 따로 떨어지는걸 상상 할 수 없었던 그런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게다가 아직까지도 각자 갈길을 가고 있는 그 둘이 다시 이어지길 원하는 팬들도 많다.)
나는 그 시절,사실 그 둘만으로 그녀의 노래가 100% 완성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음악에선 절대,작사가 이와사토 유호씨가 빠져서도 안되었다.아무리 목소리가 좋은 가수가 있다고 한들,아무리 아름다운 곡을 잘 만드는 작곡가가 있다고 한들...작사가가 그 곡에 가사를 붙이지 않으면 '노래'가 될 수 없으며,부를 수도 없는 것이다.
천사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작곡가,그 곡을 진정한 歌로 탄생시키는 작사가.이 얼마나 멋진 조합인가.그랬기 때문에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그녀의 음악속에선 유호씨도 빠지면 안되었던 것이다.
요즘 새삼스레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보다보면...또 새삼스레 감탄을 해버린다.
어쩜 그렇게 흔한 단어들로 전혀 흔하지 않은 '시'를 써내려가는걸까.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이,수수한 단어들을 어찌 그리 마음을 울리게 나열할 수가 있는걸까.
(가사집만 따로낸다면 가사집이라기보다 한편의 시집이나 동화책같은 느낌이 들 정도니까.)
평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그런 비범한 능력은 그저 한없이 놀랍고 부러울뿐이다.
암튼 노래를 듣다가 두서없이 끄적끄적.한번쯤 말하고 싶었기도 했고.
덧.
최근에서야 트라이앵글러 CD를 갖게 되었다.(그리고 정확히 듣게 되었다.)
10월에 새싱글이 나온다는 소식도 나온마당에 나는 왠 뒷북인지.워낙 이번 싱글엔 호감도가 없어서 그런걸수도.
허나 CD케이스를 열고 참여자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감격,감격 대감격!
비록 귀에 안들어온 노래였다만,무려 사노씨,와타나베씨,이마호리씨의 연주 조합이였던거다.도대체 그 조합이 몇년만이냐고...판본여사 앨범에서 그 셋이름 동시에 올라간거 본거 진짜 5년도 더 된것 같다,흑흑.
그래서 가라오케 버전만 죽어라 듣고 있음.가라오케 버전 들으니까 트라이앵글러 애정도 급상승중.(더불어 커플링곡도 가라오케 버전만 마음에 들고.)
정말이지 가끔 판본여사 목소리를 지우고 멜로디만 듣고 싶은 곡이 몇되는 나는...에고,팬인지 팬이 아닌건지.
간만에 판본여사 얘기나.이번에는 언제나 그렇듯 씹는 얘기는 아니고...껄껄.
나는 들을 노래들이 없다 싶으면 주기적으로 옛날 노랠 반복해서 듣고 있는데,그중에는 역시 사카모토양의 노래가 많다.
매번 질리도록 들어왔어도 잊혀질만할때쯤 들어주면 뭔가 새로운 맛이 나는지라.
확실히 10대에서 20대 초중반의 그녀의 노래들은 그러했다.
다른 가수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느낌.그저 팬이니까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껏 접했던 그런 노래와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였고,그 이유라면 당연 칸노씨 덕분일 것이다.
그녀의 모든 음악은 다 칸노씨의 손에서 탄생되었으니까.그 덕분에 그녀와 칸노씨가 따로 떨어지는걸 상상 할 수 없었던 그런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게다가 아직까지도 각자 갈길을 가고 있는 그 둘이 다시 이어지길 원하는 팬들도 많다.)
나는 그 시절,사실 그 둘만으로 그녀의 노래가 100% 완성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음악에선 절대,작사가 이와사토 유호씨가 빠져서도 안되었다.아무리 목소리가 좋은 가수가 있다고 한들,아무리 아름다운 곡을 잘 만드는 작곡가가 있다고 한들...작사가가 그 곡에 가사를 붙이지 않으면 '노래'가 될 수 없으며,부를 수도 없는 것이다.
천사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작곡가,그 곡을 진정한 歌로 탄생시키는 작사가.이 얼마나 멋진 조합인가.그랬기 때문에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그녀의 음악속에선 유호씨도 빠지면 안되었던 것이다.
요즘 새삼스레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보다보면...또 새삼스레 감탄을 해버린다.
어쩜 그렇게 흔한 단어들로 전혀 흔하지 않은 '시'를 써내려가는걸까.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이,수수한 단어들을 어찌 그리 마음을 울리게 나열할 수가 있는걸까.
(가사집만 따로낸다면 가사집이라기보다 한편의 시집이나 동화책같은 느낌이 들 정도니까.)
평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그런 비범한 능력은 그저 한없이 놀랍고 부러울뿐이다.
암튼 노래를 듣다가 두서없이 끄적끄적.한번쯤 말하고 싶었기도 했고.
덧.
최근에서야 트라이앵글러 CD를 갖게 되었다.(그리고 정확히 듣게 되었다.)
10월에 새싱글이 나온다는 소식도 나온마당에 나는 왠 뒷북인지.워낙 이번 싱글엔 호감도가 없어서 그런걸수도.
허나 CD케이스를 열고 참여자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감격,감격 대감격!
비록 귀에 안들어온 노래였다만,무려 사노씨,와타나베씨,이마호리씨의 연주 조합이였던거다.도대체 그 조합이 몇년만이냐고...판본여사 앨범에서 그 셋이름 동시에 올라간거 본거 진짜 5년도 더 된것 같다,흑흑.
그래서 가라오케 버전만 죽어라 듣고 있음.가라오케 버전 들으니까 트라이앵글러 애정도 급상승중.(더불어 커플링곡도 가라오케 버전만 마음에 들고.)
정말이지 가끔 판본여사 목소리를 지우고 멜로디만 듣고 싶은 곡이 몇되는 나는...에고,팬인지 팬이 아닌건지.
[2008년 6월]의 어느날 읽었던 책 중에서-모모코의 21세기 일기(2004년 7월 12일)
日常旅行 2008/08/18 17:46
일전에 사시미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둘다 아무리해도 타이거 우즈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였다. 골프의 명인으로, 흑인이고, 곧잘 군청색 모자를 쓰고, 흰색 폴로셔츠를 입고 있다는 등, 이름 이외의 여러가지것들은 생각났지만, 어째 이름만은 생각 나지 않는 것이였다.
그래서, 한시간 정도 고민한 끝에 나는「어쩐지 울프라는 이름이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로버트 울프라든가...뭐 그런 느낌?」이라고 말하자, 사시미는「전혀 아니야」라고 말하며 결국엔 인터넷을 조사하여 알아내었다.
자기판단을 하자면, 타이거라는 부분에서 난 “무서운 맹수”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울프라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도대체 로버트의 부분은 스스로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다. 누구냐고요, 로버트 울프는.
그래서, 한시간 정도 고민한 끝에 나는「어쩐지 울프라는 이름이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로버트 울프라든가...뭐 그런 느낌?」이라고 말하자, 사시미는「전혀 아니야」라고 말하며 결국엔 인터넷을 조사하여 알아내었다.
자기판단을 하자면, 타이거라는 부분에서 난 “무서운 맹수”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울프라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도대체 로버트의 부분은 스스로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다. 누구냐고요, 로버트 울프는.
가끔가다 읽는 모모코씨의 에세이중에서.
모모코씨 삽화그림도 귀엽고,글이 간단간단하여 읽는데 부담이 없어서 좋다.
어쨌거나 읽으면서 대박 웃었던 글.
글고보면 나도 이런 비숫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말이지.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주변에서 그 말을 꺼내고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같이 수긍해버린 것.)
한달전 학원 수업(일본어)시간에 영화와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분이 "오다기리 죠"를 언급하였는데,근데 그만 "오다기리 죠"라고 한다는 것을 "오니기리 죠"라고 했더랬다.허나 아무도 눈치 못채고 한 5분동안 서로 "아,그 '오니기리 죠'말이에요~어쩌구 저쩌구"를 계속 반복했다는 그런 일화가...(먼산)
와하하!
그 멋진 남정네를 일순간 주먹밥으로 만들어버린 우리의 실수에 그저 웃지요.
[2007년 2월]의 어느날,도쿄 이케부쿠로.
異國旅行 2008/08/17 14:50
2007년 2월 이케부쿠로에서의 밤.
이날은 모 극장에서 모 뮤지컬을 보기로 되어있던 날이였는데,공연을 보았던 그 극장은 이케부쿠로의 번화한 거리 뒷편에 있었고,굉장히 넓은 광장을 사이에 두었으며,화려한 이케부쿠로의 거리의 이미지와는 달리 놀라울정도로 한적한 분위기였다.
공연을 보고 난 후,그 한적한 광장을 가로질러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그 순간,광장에 울려퍼지는 거리의 싱어의 노래와 기타선율.
그 울림 때문인건지,아니면 아직은 차가운 겨울바람 때문인건지 광장한켠의 분수위에 비친 네온색의 물결은 잔잔하게 일어났고,심지어 내 마음의 울림마저 일어나 어쩐지 최고로 감상적이 되어버렸다.
가끔,어찌보면 별거 아니지만 그걸로 인해 순간순간 행복하다거나 짝사랑하는 사춘기 소녀마냥 감상적이 되어버릴 때가 있다.
이것도 그렇잖은가.거리의 싱어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고,밤이란것도 매일 맞이하는 흔한것이며,도시의 밤도 역시 흔한것이다.
그런데도 평상시와 달랐던 것은(순간순간마다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만),아마도. 이때가 '여행중'이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일상이지 않은,다른 장소의 여행에서 접하게 되는 일상의 것들.
평상시와는 살짝 비틀어진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흔해빠진 일상이 새삼스러워지고,고마워지며 또한 애틋해지는 그 마음 때문에...나는 아마 그래서,그런 기분을 느꼈던것인지도 모른다.
[2008년 2월]의 어느날,홋카이도 오타루.
異國旅行 2008/08/17 13:55
이제 곧 일본(그리고 한국에서도)개봉하는 영화 20세기 소년에서 오쵸역을 맡은 토요카와 에츠시씨.
얼굴을 보자마자 분명 낯이 익는데 도대체 어디서 보고 낯이 익은건지 생각이 나질 않는게다.
일본 드라마를 즐겨보았더라면 금방 기억해낼 수도 있었겠지만(워낙 유명한 배우라고 하니까.)드라마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우리나라 드라마까지 잘 안보는 나로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그런데 어째서?
...라고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때 어느날 문득 떠오른 영화 러브레터,그리고 시게루 선배.
모두들 하얀 커트사이로 왕자님 포스를 풍기며 미소를 흘리던 남자 이츠키에 반할때,나혼자 어쩐지 그 능글능글한 시게루 선배에게 반하지 않았던가.(뭐 나의 성격과 취향상 그러는게 당연한거지도 모르지만.)그러니 이름은 기억못해도,어디에 나왔는지 기억못해도 마음속 어느 곳에서는 그의 얼굴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나보다.러브레터를 본지 벌써 10년은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얘기를 바꿔서,오타루에 가면 그 시게루 선배가 일하던 유리공방을 꼭 한번 가고 싶었다.
(더불어 이츠키의 집도 가고 싶었지만 마침 내가 가는 해에 불에 타 몽땅 없어져버려서 앞으로도 가고 싶다고 해도 갈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텐구야마 근처에 있는 glass studio in otaru.
1층엔 저렇게 장인들이 유리를 만들고 2층엔 그들이 만든 유리제품이 전시 및 판매되고 있었다.
한참을 빙글빙글 돌며 너무나 예쁜 유리제품에 눈길을 쏟았고,또 한참을 앉아 유리공예하는 장인의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았더랬다.
오타루는,겨울이 제맛이다.
봄,여름,가을에 가본적도 없고 기껏해야 겨울에 한번 가 본것뿐이면서 이런 소릴 하는것이 참 우습긴 하지만,아마 봄,여름,가을,겨울에 다 가본다고 하더라도 나의 기억엔 겨울의 오타루가 가장 멋질것이라 자신할 수 있다.
작은 운하도,빛의 축제도,오르골도,소복히 쌓였던 그 눈과 함께 오타루를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 만들어주니까.
그래서,그런 오타루에서의 추억 하나하나가 이제 겨우 불과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먼 기억의 추억처럼 느껴지는건 아마도 그 로맨틱한 분위기에 휩쓸려 어쩐지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였기 때문은 아니였을런지.




